흔히 전철에서 시간을 “죽인다” 고 표현하는 데, 전철 내에서 보내는 시간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특정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이른바 이동시간이라는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아무래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이다 보니 도달하기 전까지의 이동시간은 낭비되고 있는 시간이라는 암시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시간을“죽인다” 고 표현할 때는 또 다른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이는 그 시간에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속된 말로 “멍 때리고 있다” 는 것이다. 필자는 흔히 지하철에 타면 가만히 앉아서 (혹은 가만히 서서) 음악을 들으며 창 밖을 멍 하니 쳐다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그야말로 아무 곳이나 생각 없이 뚫어져라 바라볼 때가 많은데,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비단 필자만의 일이 아닌 듯 하다. 상대편에 앉아있는 승객을 별 생각 없이 쳐다보다 눈을 마주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회피한 적도 한두 번 일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일본인들은 전철 내부에서 시간을 죽이는 일은 별로 하지 않는 듯 하다. 아무래도 민족성이 낭비를 싫어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그저 필자의 편견일 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을 지루해서 못 견뎌 내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어찌됐건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듯 하다. 일본에서 전철에 탄 후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옴짝달싹 못하는 지옥의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보통 사람들이 조그마한 책이나 핸드폰, 게임기, 만화책 등 무언가를 손에 든 채 눈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처럼 멍하니 상대편을 응시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 하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 일수록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책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노인 분들께서 세로로 씌어져 있는 일본 서적을 (겉 표지는 종이 커버로 감싸 무슨 책인지 다른 사람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참 난해한 문화차이 인 듯 하다) 읽으시거나 한 손에는 스도쿠를 들고 다른 손에는 펜을 들고 계신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정도다. 그에 비해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연령대로 내려올 수록 게임기, 휴대폰, 잡지, 혹은 스마트 탭 등등 전자 기기나 가벼운 읽을 거리가 흔한 것 같다.
어찌됐건, 일본 전철에서의 “시간 죽이기” 는 시간을 하릴없이 보낸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그 짧은 자투리 시간을 책을 읽던, 휴대폰 게임을 하던, 혹은 스도쿠를 하던, 어떻게 해서든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최근에는 한국 전철에서도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동영상을 보거나 하는 인구가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전철을 탄 상태에서 가만히 있는 대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일본에서만큼 익숙한 풍경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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